칼럼

[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 (10) 친족 간 강제추행 사건] 성범죄 고소 취소할 수 있을까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10-16 11:57
조회
839
여중생 A는 명절을 맞아 부모와 친척집에 갔다가 큰아버지 B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B는 A의 부모가 친척들과 어울리는 사이 나쁜 마음을 먹고 A가 자는 방에 몰래 들어갔고,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과 성기를 만졌다. A는 불쾌한 느낌에 잠을 깼지만 B를 보고 충격과 두려움으로 내색하지 못했다.

A는 1년이 지난 어느 날 부모에게 이 사건을 털어놓았다. A 부모는 당장 B에게 항의했지만 B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분노한 A와 부모는 B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조 제2항 친족 간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고소 사실이 알려지자 친척들이 A 가족을 만류했다. A 가족도 내심 B가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고소를 취소해 없던 일로 하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성범죄 고소 후 조사가 진행 중인데 고소 취소를 하면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의외로 많은 피해자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고소를 진행한다. 하지만 대답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이다.

형사고소 절차에 들어가기에 앞서 피해자들이 가장 유의해야할 점은 형사절차와 민사절차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이다. 민사소송 등이 사인간의 법적 지위나 손익 등을 두고 다투는 것인데 비해 형사절차는 범죄 자체를 반국가적 행위로 보고 국가차원에서 이러한 위험 요소를 제어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피해자라 해도 일단 고소가 제기면 임의로 수사나 재판을 중지시키거나 되돌릴 수는 없다. 살인사건 피해자나 유족이 괜찮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살인자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채 다른 구성원과 함께 살아나기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범죄의 피해자 등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나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경우는 예외다. 모욕이나 가벼운 폭행같은 경미한 범죄의 경우 고소인이 고소를 취소하면 형사절차는 사실상 종료된다. 하지만 절대다수 범죄는 고소 접수로 범죄사실이 인지된 이상 고소 취소와는 관계없이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다.

가해자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았거나 합의가 잘 이루어져 피해자가 더 이상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 피해자의 고소 취소와 합의서 제출은 검사가 가해자를 불기소 또는 기소유예하거나 재판에서 처벌이 경감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고소 제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생 모두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며 일단 시작되면 임의로 멈추거나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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