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 (21) 성폭행 무고 사건]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0-04-28 09:38
조회
1200
[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 (21) 성폭행 무고 사건] 형사피고인과 변호인의 하모니



며칠 전 지인의 초대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첼로 공연을 관람했다. 조용하고 엄숙한 무대 위에서 12대의 첼로가 저마다 맡은 역할을 연주하며 하나의 하모니를 이뤄내는 소리는 무척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연주자들이 수많은 시간을 함께 연습하고 소통한 시간이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청중 앞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합주에서 연주자들의 조화가 필요한 것처럼, 의뢰인과 변호인 역시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서로 진솔하게 소통하고 이해해야 하는 관계다.

예전에 맡았던 무고 사건이 있었다. 성폭행 피해를 당한 여성이 상대방을 신고했는데 그 남자는 경찰과 검찰의 조사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남자는 여성을 무고 혐의로 고소했고 여성은 피해자에서 피의자 신분이 됐다.

그 여성을 처음 마주한 자리에서 변호인으로서 그 남성의 행위가 성폭행이었다고 확신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물어 봤다. 이는 매우 민감한 질문에 해당할 수도 있었지만 성범죄 무고 사건의 피의자와 변호인이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었다.

만약 그 여성이 성폭행이 맞다고 대답한다면 변호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무죄 주장을 할 것이며, 만약 여성의 생각이 고소 당시와 달라졌다면 그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변론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 같이 최선을 다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여성은 성폭행을 당한 것이 맞으며 무고를 한 것이 아니니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녀의 의사를 받아들였으며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어 더욱 큰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피의자 조사를 거치고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자 굳건했던 여성의 마음은 달라졌다. 재판과는 별도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그녀는 어서 빨리 재판을 끝내고 그 삶에 돌입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갈수록 재판 절차에 집중하지 못했고 마침내 변호인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인해 평생 전과를 등에 지고 살아가야할 것이 안타까워 수차례 설득을 해봤지만 이미 여성의 마음은 굳건했다. 재판 절차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라 별도로 혐의에 관한 주장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재판에 집중하지 못해 선고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이 일은 아쉽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변호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은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의뢰인과의 이인삼각(二人三脚)에 실패해서 결과가 좋지 못할 때에는 변호사로서의 책임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수차례 칼럼에서 강조했지만 의뢰인과 변호사는 깊은 신뢰와 진솔한 소통을 바탕으로 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의뢰인은 그런 변호사를 찾아내야만 하며 변호사 역시 그 요청에 끝까지 부응할 수 있도록 의뢰인의 마음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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