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 (14) 모텔 강간 사건] 무고로 재판에 넘겨진 강간 피해자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10-16 11:59
조회
1171
A(여, 21세)는 술집에서 우연히 B(남, 22세)와 합석하게 됐다. A와 B는 룸술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점차 취기가 오른 이들은 키스를 하는 등 스킨십을 나눴다. 이들은 대중교통이 끊긴 깊은 밤이 되어서야 술집에서 나왔고 A는 B로부터 함께 모텔에 가서 쉬자는 제안을 받게 됐다. A는 아직 B와는 성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하고 술기운으로 졸음이 쏟아지고 집까지 갈 택시비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A는 B에게 절대로 스킨십 없이 새벽까지 쉬고만 나올 거라는 다짐을 받은 후 함께 인근 모텔로 들어갔다.

하지만 B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돌변하여 A를 성폭행하기 위해 완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저항하던 A는 결국 성폭행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임신이라도 막아보기 위해 B에게 피임기구 착용을 간곡히 요청했다. 이에 B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피임기구를 착용한 후 A에 대한 범행을 마저 완료했다. A는 아침이 되어 모텔에서 나오자마자 B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고 사건 당시 입고 있던 속옷과 피임기구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런데 속옷을 조사한 결과 A의 팬티에선 B 외에 다른 남성의 정액도 발견됐다. 사실 A는 사건 전날 클럽에서 만난 다른 남성과 원나잇 성관계를 가졌던 것이다. 또한 룸술집 건물에서 설치된 CCTV 촬영화면에서 A와 B가 스킨십을 나누는 장면이 발견됐다.

이러한 정황을 파악한 경찰은 제1차 고소인 조사에서 A에게 룸술집에서 있었던 일과 사건 전날의 행적, B의 피임기구 착용 경위에 관해 질문을 했다.

이에 A는 사건 전날의 원나잇 성관계 및 사건 당시의 일을 전부 그대로 말할 경우 자칫 자신을 문란한 여자로 여겨 성폭행 주장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A는 다른 남성의 정액에 관해서는 모르는 일이며 룸술집에서 스킨십을 한 적도 없을 뿐더러 피임기구 착용을 요청한 일도 없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A의 진술 태도에 수상한 점을 느낀 경찰은 제2차 고소인 조사에서 관련 증거들을 제시하며 A의 진술의 신빙성을 재차 살폈고 결국 A는 겁이 나서 거짓말을 했다며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다.

그리고 이러한 진술 번복으로 인해 A의 진술 전체의 신빙성에 의문을 품게 된 검사는 B를 불기소 처분했고 곧이어 A를 무고 혐의로 기소했다.

피해자가 조사과정을 통해 가해자로 뒤바뀌게 되는 일, 즉 피해사실을 수사기관에 아예 알리지 않은 것만 훨씬 못하게 되는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상당 부분은 고소인이 조사 과정에서 수사기관에 실체적 진실을 전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형사 고소 절차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 중 하나는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수사기관에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사소송에서의 원고의 입증책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혐의 사실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수사기관에 제시해야지만 수사기관도 그 이상의 증거를 수집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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