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 (11) 여고생 강간 사건] 고소기간에 관한 오해와 진실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10-16 11:58
조회
1089
A(여, 27세)는 고1(16세)이던 2008년 1월 늦은 밤, 같은 학원을 다니던 동갑내기 남학생 B에 의해 학원 복도에서 끌려가 강간을 당했다. 분노한 A의 부모는 학원과 B의 부모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A는 학원의 만류와 부모의 적극적인 사과, 소문에 대한 우려 등으로 신고를 포기했다. 하지만 이때의 충격은 A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고, 결국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이 지난 최근 B를 강간 혐의로 고소하기로 마음먹었다.

A는 사건 발생 후 11년 가까이 지난 지금 B를 강간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소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오"다.

이 사건을 단지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형법상 강간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로,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강간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또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공소시효에 관한 특례를 두어 미성년자(19세 미만자)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는 피해자가 성년에 달한 날부터 진행한다고 함으로써, 미성년 성폭력피해자의 권리를 성년 피해자에 비해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

위 규정 등을 종합하면, A는 피해 당시 만 16세의 미성년자였으므로 B의 강간죄의 공소시효는 A가 만 19세가 되는 해인 2011년부터 진행되게 되므로, 2019년 현재 공소시효인 10년이 아직 경과하지 않아 A가 B를 고소하는 일은 일견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왜 답은 "아니오"인 것일까? 이는 우리나라가 형사범죄에 대한 법을 적용할 때 "행위시"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B가 지금 2019년 B를 고소한다 해도 B에게는 A를 강간하던 당시의 법이 적용되는 것이다. B가 A를 강간했던 2008년 1월 당시에 강간죄는 친고죄에 해당했으며,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19세 미만의 여자청소년에 대한 강간죄는 공소시효와는 별도로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2년이 지나면 고소하지 못한다는 기간 제한이 있었다.

이러한 규정이 성범죄 피해자의 고소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받아들여져서, 2008월 2월 4일 13세 이상의 청소년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과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 13세 미만의 아동에 대한의제강간·의제강제추행을 친고죄에서 제외한 것을 시작으로, 2013년 6월 19일부터는 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모든 성범죄의 친고죄가 폐지됐다,

하지만 B의 범죄는 행위시인 2008년 1월 당시의 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강간 피해를 입은 지 2년 이내에 B를 고소하지 않았던 A는 고소권을 이미 상실한 지 오래이며, 이후 법이 개정돼 친고죄가 폐지됐다고 하더라도 이 법이 B에게 소급 적용돼 A의 고소권이 부활하진 않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범죄에 대한 판단은 대개 "행위시" 기준이며 법은 소급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형법의 기본 원칙이므로 가해자를 처벌하려는 범죄 피해자들은 이점을 무엇보다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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