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 (9) 성범죄 폭로 사건] 가해-피해, 명예훼손 주의해야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10-16 11:56
조회
1092
공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대학원생 A남은 평소 주사가 심한 편이었다. 연구실 송년회가 있던 날 A는 상당히 취한 상태에서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후배 대학원생 B녀를 은밀하게 따로 불러내 추근대기 시작했다. A의 행동에 불쾌함을 느낀 B는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B의 행동에 격분한 A는 B를 성폭행하기에 이르렀다. B는 사건 직후 A를 고소했고 다음 날 술이 깬 A는 두려운 나머지 연구실 동료들 및 지인들에게 지난 밤 있었던 자신의 성폭행 사실을 알리며 대처 방안에 관한 조언을 구하였다.

20대 후반 동갑내기인 C녀와 D남은 중견기업의 입사 동기로서 최근 호감을 가진 사이로 발전해 두어 차례 데이트를 하게 됐다. 교제 초반이라 아직 적극적인 스킨십을 원하지 않는 C와 달리 계속 성관계를 원했던 D는 어느 날 술기운에 C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 D의 행동에 분노한 C는 회사 인트라넷에 D의 성폭행 사실을 알리는 내용을 게시하고 회사 동기들과의 단체 채팅방에도 이를 알렸다.

성범죄는 피해자에게는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고통스러운 사건이다. 예전에는 소문이나 평판이 두려워 신고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점차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성범죄 피해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최근 충격적인 성범죄 사건들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면서 처벌 수위도 차츰 높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위 사례들처럼 성범죄 사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사건 직후 주위에 사건 내용을 알리며 도움을 청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해자의 경우 이러한 대처 방식이 상황을 호전시키기는커녕 피해자에 대한 가혹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자신의 범죄 사실에 대한 고백은 동시에 피해자의 성범죄 피해 사실에 대한 유포에도 해당하는 것이다. 비록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범죄, 특히 성범죄의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명예의 실추, 즉 '사회적 평판'이 하락하는 일에 해당하는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통한 2차 가해 행위는 그 자체로도 형법 제307조 제1항 소정의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성립시킬 뿐만 아니라, 처벌에도 매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명예훼손 행위는 피해자의 경우에도 매우 유의해야 할 문제이다. 피해자가 혼자 고통을 감내하는 것보다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섣불리 불특정 다수나 인터넷·SNS 등에 가해자를 특정해 피해사실을 알릴 경우,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고소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나라 형법은 비록 범죄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범죄행위를 대중에게 감출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가해자가 성범죄로 처벌받는 것과는 별개로 피해자 역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는 이를 수단으로 피해자에게 성범죄 사건 합의를 종용하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성범죄 피해로 인해 도움이 필요하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성범죄 관련 전문기관이나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들과 상담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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